전북 완주 천등산
2009년 5월 24일
오늘은 백만사 산행날이다. 우리 백만사는 매월 제 4주 일요일이면 부부 동반 등산을 한다. 오늘은 정우종회원 부부만 가정사를 이유로 불참했다. 그러나 오후에 산행을 마치고 돌아와서 저녁 식사 시간에는 함께할 수 있다고 해서 다행이었다. 아침 8시에 산남고 주차장에서 만나서 이효정 대장과 내차로 출발하기로 했다. 주차장에 도착하여 이효정 대장 내외분과 회원들을 기다렸다.
8시가 되니 이용원 회원 내외분, 이완호 회원 내외분이 바로 도착하여 일정을 설명하고 출발하였다. 정우종회원이 참석하지 않아 리드하는 사람이 없어 전통의식인 발대식은 생략하였다. 마음속으로 섭섭하였지만 할 수 없다.
<천등산 개요>
천등산은 전북 완주군 운주면에 자리한 해발 706m의 하늘을 밝힌 등불의 산이다. 대둔산에서 남쪽방향으로 가까이 자리하고있으며 대둔산 도립공원에 속한다.
천등산의 정북녘에도 대둔산(878m)이란 소문난 명산이 자리하여 사시사철 인산인해를 이룬다. 그 아름다운 대둔산의 절경에 행여 어둠이 깃들세라 하늘 높이 등불을 밝혀 대둔산의 전경을 환하게 비춰주는 산이 바로 천등산이다
천등산 주변 지도
천등산 산행도
우리는 청원 나들목을 통하여 경부고속도로로 들어갔다. 고속도로는 예상 외로 한산하다. 대전을 지나 판암 갈림길에서 대진고속도로로 접어들었다. 대진고속도로는 더 한산하다. 그러나 굴곡이 심하고 다리 위 길이 많아 운전하기가 만만찮다. 추부나들목에서 빠져나가 17번 국도로 접어들어야 한다는 이효정 대장의 말씀을 되새기며 나갈 길을 놓지지 않으려고 신경을 썼다. 기억에 의하면 판암에서 들어가면 바로 추부가 나오기 때문이다,
추부 나들목으로 안전하게 빠져 나가서 좌회전하여 이효정 회원의 뒤를 따라 17번 국도를 계속 달렸다. 도로는 2차선으로 굽이길이 많았지만 한산하여 운전하기는 편했다. 처음 가는 길이기 때문에 방심하지 않았다.
배티고개 휴게소에서 잠시 내려 화장을 고치고 커피를 마셨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눈앞에 마치 금강산처럼 기암괴석으로 아름다운 산이 앞을 가로막았다. 여기가 대둔산이다. 대둔산은 여러번 가보았지만 이렇게 뒤쪽에서 바라보기는 처음이다. 아마 있었더라도 여기가 대둔산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대둔산은 앞에서 보는 것보다 이렇게 뒤쪽에서 바라보는 것이 더 아름다웠다. 대둔산을 처음 와본 것은 대학 1학년 때이다. 그 때 2학년 선배 여학생들과 함께 왔다가 길을 잃어 고생했던 일이 생각나서 웃었다.
배티재 휴게소에서 바라본 대둔산
산행 들머리 찾기는 쉽지 않았다. 도롯가에 냇물이 흐르고 있기 때문에 들머리가 눈에 뜨이지 않는다. 먼저 다녀온 사람들의 산행기에서 들머리에 보가 있었던 것이 생각나서 '저기가 아닐까' 했는데 바로 거기였다. 회원들을 길가에 내려서 산행 준비를 하도록 하고 우리는 다시 장선리로 되돌아 갔다. 하산을 위하여 차를 한 대 대기해 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내 차를 장선리 천등산 휴게소 앞에 주차하고 되돌아오니 회원들은 참죽나무순을 넣고 부친 부침개를 먹고 있었다. 시작도 하지 않는데 벌써 먹는 것이다. 오늘은 정우종 회원 내외분이 빠져서 먹는 것이 덜할 줄 알았는데 역시 백만사는 백만사이다. 정우종 회원의 필수 준비물인 삶은 달걀은 이완호 회원 내외분이 준비해 왔다. 다만 아쉬운 것은 소주가 빠졌다.
10시쯤 우리는 그림에 있는 것처럼 보를 건너 산기슭으로 붙었다. 개울가에는 찔레꽃이 하얗게 피어 있었다. 나는 하햫게 핀 찔레꽃을 보면 코잔등이 시큰하다. 어린 시절 찔레꽃 필 때면 왜 그렇게 배가 고팠는지 모른다. 빨갛게 솟아오르는 소담한 찔레순을 발견하면 횡재한 것처럼 가슴이 뛰었다. 사람들은 찔레꽃이 예쁘고 그 향기가 좋다고 하지만 나는 되새기고 싶지 않은 기억이 있다.
산행기점에길가에 주차
산행 준비 (무슨 준비일까)
산행 들머리 길은 소나무와 활엽수가 적당히 어우러져 그늘을 이룬 오솔길이었다. 사람들이 많이 다녀서인지 수렛길만큼이나 넓다. 길은 돌도 없이 평탄하다. 우리는 지난달 다녀온 보현산의 철쭉 얘기를 하며 걸었다. 아내는 자꾸 연인산 이야기를 한다. 보현산에 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실은 연인산 철쭉은 보현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어느 정도 걸어 열기가 돌아 몸이 풀릴 무렵에 조금씩 오르막길이 나타난다. 그러나 오르막길도 힘들지 않다. 숲이 우거지고 숲 속에서 가끔 폭포가 나타나 절경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름 모를 꽃들이 하얗게 피어 있다. 때죽나무를 비롯하여 층층나무 산딸나무 등이 모두 하얀 꽃이다. 5월의 꽃은 대부분 하얗게 핀다.
전날 노무현 전대통령이 높은 바위에서 뛰어내려 이 세상을 하직하였다. 가슴 아픈 일이다. 그 분도 나처럼 하얀꽃을 보면서 어린날의 가난을 기억하였을까? 나는 그 분을 아주 깨끗하게 살아온 정치인이라 생각한다. 재임기간의 공과는 잘 모르지만 그의 청렴함은 그의 정치 생명이었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렇게 깨끗하게 살아왔기 때문에 세상의 일에 더 많은 번민을 하고 고통을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죽음 이후에는 아무것도 감각할 수 없음을 왜 몰랐을까? 삶과 죽음은 하나라는 깊은 의미를 터득했으면서 하나이기 때문에 죽음 이후에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고, 혹 변한다 하더라도 알 수 없다는 사실을 왜 몰랐을까? 답답하다. 안쓰럽다.
비단길
길은 점점 비탈지더니 폭신한 흙길이 돌길로 바뀌었다. 돌길을 걸으면 무릎이 아프다. 이때 무릎이 덜 아프게 걷는 방법이 있다. 발을 뒤꿈치부터 땅에 대든지 앞꿈치부터 대든지 하면서 무릎에 탄력을 주는 것이다. 이것도 신경을 쓰면서 연습하면 효과를 볼 수 있다.
나는 최근에 앓은 폐렴 때문에 손해본 체력을 회복하려고 숨을 크게 들여쉬기도 하고 잘게 나누어 쉬기도 하면서 가급적 속도를 일정하게 걸어 보았다.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그러면서 걸음을 잘게 나누어 놓아 보았다. 무릎에도 어려움이 덜 미치는 기분이다. 다행히 가파른 길에 놓인 돌계단 높이가 학교 계단과 비슷한 높이로 놓여 있어서 여느 산보다 걷기가 쉽다. 지난 주 연인산보다 더 가파른데 숨가쁨은 덜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돌길 옆에 폭포가 나오고 폭포곁에는 꽃이 우거졌다. 한동안 걸어가다가 길가에 해태를 발견하였다. 어느 사찰이나 신당에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길가에 놓인 바위에 어느 석수가 새긴 것인지 알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 완성된 형태였다. 또 한참 걷다가 길 가운데 서 있는 선돌을 발견하였다. 규모는 작지만 꼭 악희봉 입석 같은 모양이다. 회원들은 그 앞에서 사진을 찍고 나는 계속 걸었다.
오솔길에 웬 해태
폭포도 있고
선돌을 만나
선돌 뒤에서
봉우리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골짜기에서 올려다 보는 봉우리는 우람하고 멋지다 경사가 급한 돌계단을 계속오르니 숲을 벗어나 하늘도 보인다. 이제 안부를 만나게 될 것이다. 주변에서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느낄 때쯤해서 석굴이 나타났다. 지도에서 석굴을 봤을 때는 그냥 돌틈에 굴이 하나 있었겠지 했는데 막상 와서보니 사람들이 거처하고 있었다. 주변에는 밭이 있어 채소를 심었고, 샘도 있고 여러가지 살림 도구들이 정갈하게 정돈되어 있다. 큰 돌 아래 공간을 돌과 흙으로 막아 거처하는 방으로 만들고 거기에서 사람 소리가 난다. 그리고 할머니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기도를 할 수 있는 단도 있고 돌을 붙여 탑도 만들었다. 비닐 하우스에는 손님이 많이 올 때 잠을 잘 수 있도록 텐트까지 마련되어 있었다. 보기에 사찰은 아니고 민간의 신당처럼 보였다.
석굴
석굴을 지나 돌아 올라가니 여기저기 펀펀한 공터들이 많이 발견된다. 그리고 기와편과 자기편이 굴러다닌다. 자기편은 드물지만 기와편은 그 숫자가 많다. 그리고 기와는 대부분 줄무늬가 있다. 과거에 사찰이나 기도처가 많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그렇다면 왜 없어졌을까?
공터들을 지나 어느 한 곳에 이르니 커다란 바위가 있고 보기 좋은 소나무가 두 그루 서 있는 전망대이다. 전망대는 아주 큰 바위이고 바위는 꼭 봉화마을 노대통령이 뛰어내렸다는 부엉이바위처럼 생겼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마음이 아프다. 운주면이라고 생각되는 마을이 다 보인다. 운주면 소재지일 듯한 곳에는 길이 있고 우리가 건너온 냇물보다 훨씬 물이 많이 흐르는 냇물이 있다. 그리고 바로 아래 우리가 건너온 냇물도 보이고 이효정 회원 차도 보였다. 높은데 올라오면 가까운데를 바라보지 말고 먼곳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래야 두렵지 않다. 보다 먼 곳에는 우리의 미래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더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가까이를 바라보면 자칫 삶과 죽음이 한가지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전망대에서 삶은 달걀과 과일을 먹고 잠깐 올라가니 바로 주능선이 나오고 주능선이 나오자 마자 정상이다. 정상에서 사람들이 점심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 모임도 몇 쌍의 부부들이 모여서 왔는지 아주 흥겹게 점심식사를 한다. 산다는 건 별게 아니다. 이렇게 즐거운 일을 찾아 소박하지만 맘편안하게 사는 것이다. 우리도 자리를 보아 점심을 가져 왔다. 우리는 그냥 아침에 먹던 반찬을 가져 왔는데 다른 집들은 온통 풍성하다. 특히 상추 쌈이 많았다. 상추에다가 쌈장을 온갖 솜씨를 다 발휘하여 만들어 왔다. 맛있게 몇 쌈을 싸니 배가 불러 일어날 수도 없다. 게다가 과일을 먹고 커피로 입까지 가셔내고 나니 더 부러울 것이 없다.
멀리 운주면 소재지인가
정상에서
정상의 여인들
누가 빠졌나?
쌈밥 정식
점심을 먹고 나서 하산을 서둘렀다. 하산은 장선리 쪽 능선을 탔다. 길은 아주 평탄하고 좋았다. 평탄한 길이 나오다가 바위 지대가 잠시 있는가 하면 산죽군락지대를 지나기도 한다. 길은 부드럽고 좋다. 이 때 어떤 부부인지 나이 지긋한 남녀가 올라오며서 여자 쪽에서 계속 불만이다. 한 20m나 되는 줄을 탔다는 것이다. 정말로 평탄하던 길이 문득 끊어지더니 석벽이 나타났다. 절벽은 거의 수직으로 되어 있으나 바위가 밟기 좋았다. 그렇지만 물과 진흙이 묻어 있어서 미끄러워 보였다. 나는 먼저 내려와서 뒤에 내려오는 여자회원들을 안심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앞장을 섰다. 그러나 모든 회원들이 다 걱정없이 쉽게 내려온다. 놀랄만하다. 다들 백두산 후지산을 등산한 경력이 있어서인지 자신만만하다.
줄타기(이용원회원)
권명오 회원
송여사
권성희 회원
이정희 회원
이효정 회원
가파른 너덜지대를 지나 솔숲 사이 오솔길을 지나 산소 옆길을 지나 바로 마을로 내려왔다. 산행은 오후 2시쯤 끝났다. 아침에 내 차를 주차해 놓은 휴게소를 찾아 이효정회원 차를 회수하여 온길을 되밟아 청주로 돌아왔다. 산남고 주차장에서 정우종회원과 4시 50분에 만나기로 했다. 산장식당에서 염소전골과 또 다른 전골로 보신을 하였다. 저녁을 일찍 먹어 해가 남았다. 그래서 더욱 헤어지기가 아쉽기도 했지만 국상중이라는 것을 감안하여 경건한 마음으로 아무일 없이 헤어졌다.
뉴스는 여전히 안타까운 소식과 가슴 아픈 일화들을 전하고 있다.
산행을 마치고(장선리)
마을 앞 분수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