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답사/등산과 여행

합천 황매산 철쭉

느림보 이방주 2009. 5. 10. 23:29

 2009년 5월 9일

 

황매산 철쭉이 유명하다는 말은 많이 들었다. 그러나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이 다녀온 산행기를 보면 철쭉은 보통 고산지대에 나는 것이 아니고 야산에 피는 철쭉 같았다. 그러나 어떤 꽃이면 어떠랴. 한번 다녀온 분들은 누구나 황매산 철쭉에 탄복한다. 그것을 보면 보통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함께 근무하는 이효정 선생님의 제안에 바로 군말없이 따라가기로 했다.

 

아침 7시 20분에 체육관 앞에 나가니 차와 사람이 엉켜 내가 타야할 차를 어떻게 찾아야 할 지 난감하기만 했다. 내 차를 흥덕구청 앞에 주차하고 서둘러 내려와 토요산악회를 찾았다. 안면이 있는 분들을 많이 만났다. 또 함께 근무하던 김조영 선생님도 만났다. 이효정 선생님과 함께 평산회에 회원이 홍세영선생님은 인터넷에서만 뵈었는데 처음으로 인사를 나누었다. 사진보다 훨씬 인상이 너그러워 보이고 좋으셨다. 반가웠다. 쉬는 토요일이라 선생님들이 많은가 보다.

 

차는  서청주 나들목을 통해서 중부고속도로 들어 석실리 남이 분기점에서 경부고속도로에 들어섰다가 대진고속도로를 통하여 합천으로 달렸다. 인삼랜드 휴게소에서 커피를 한 잔 마시고, 다시 산청휴게소에 들러 화장을 고친 다음에 단성 나들목으로 빠져나와 황매산 쪽으로 달린다. 목적지가 가까워졌는지 속도가 느려진다. 알고 보니 황매산으로 가는 차가 밀려 있어서 그렇다. 승용차와 관광버스가 길게 늘어서 있어 과연 산에 올라갈 수 있을까 걱정이었다.

인삼랜드 휴게소

 휴게소의 분수

 

11시가 넘어서야 산행 들머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서둘러 차에서 내려 짐을 꾸리고 산행 준비를 했다. 준비가 없어 배낭은 가볍다. 멀리 보이는 황매산 날망에 철쭉이 산불이 난 것처럼 붉게 타오르고 있어 기대에 부풀었다. 산 아래 마을에는 아카시꽃이 한창이다. 마을에는 보랏빛 오동이 피어 한없이 평화로워 보였다.  산 아래에서 올려다보이는 황매산은 바위와 나무가 어우러져 매우 아름답게 보였다.

 

산 입구에는 등산객을 대상으로 해서 농산물을 파는 분들이 있었다. 그러나 밤이나 돌미나리를 팔고 있지만 들머리에서 그것을 배낭에 넣고 산으로 올라갈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러나 그분들은 아무도 조급해 하거나 사라고 졸라대지는 않았다. 칡즙을 파는 사람도 있어서 어마어마하게 큰 칡을 차에 싣고 와서 즉석에서 즙을 내어 팔았다. 그러나 사 마시는 사람들은 흔하지 않았다. 그래도 여유있게 기다린다. 들머리에 '모산재'라는 표지판을 해학적으로 세워 놓았다. 역시 아랫녘 사람들은 예술적 기질은 알아줄 만하다.

 먼데서 봐도 보이는 황매산 철쭉

 밤꽃도 안피었는데 아람이

 이렇게 소담한 칡이

 모산재 들머리 재미있는 이정표

 

올라가는 길은 처음부터 가파르고 돌길이라 힘이 들었다. 게다가 등산객이 많아 한참씩 기다려야 한다. 햇살은 끊임없이 내려 쬐고 고개를 들어보면 갈길은 먼데 사람들은 밀려 떠날 줄을 모른다. 감바위를 지나 영암사를 곁에 두고 모산재까지 오르는 길만으로도 땀을 흘려야 했다. 그러나 주변의 경관이 빼어나서 정체되는 동안 뒤로 돌아서 세상을 내려다 보기도 하고 땀을 닦기도 하면서 차분하게 기다렸다. 오히려 오랫동안 등산을 하지 못한 나로서는 정체되는 것이 힘이 덜할 것할 것 같았다. 때로는 철사다리를 오르기도 하고, 때로는 밧줄을 잡고 오르기도 하고, 때로는 돌뿌리를 잡기도 하면서 기묘한 바위가 있는 전망대에 올랐다. 이효정 선생님이 쑥떡을 가져 와서 함께 먹으며 우리가 출발한 대기리를 내려다 보았다. 버스나 차량이 10리는 늘어선 것 같았다. 모두가 고물고물 기어가는 벌레 같았다. 저수지 그림이 일품이다. 멀리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이 평화롭다.

 

 암릉으로 오르는 길

 뜬 바위

 황포돛대 바위

 

 산아래를 배경으로 이효정 선생님

 병풍 앞에서 이효정 선생님

 돛대 바위에서 바라본 능선

 

 모산재에서 이효정 대장

모산재에서

 

 모산재에서 내려다 보니 대기 마을로 들어오는 차량의 행렬이 끝이 보이지 않는다

 

떡을 먹고 물을 마시고 출발하니 또 사람이 밀린다. 주변의  아름다운 산줄기를 바라보며 기다려서 사다리를 오르고 바위를 돌아 계속 올라 갔다. 올라갈수록 먼지는 더욱 심하게 난다. 주변의 신록과 어울린 암벽은 한폭의 병풍처럼 아름답다. 자연은 아무래도 인간이 따라갈 수 없는 예술가이다. 흘러내는 듯한 암벽도 아름답지만 그 위에 군데 군데 세워진 나무들은 그냥 그대로 기막힌 조화를 이룬다.

 

철사다리를 오르고 암벽을 올라 모산재에 이르는 길목에는 낯익은 사람들이 자리를 보고 있다. 우리가 점심을 먹을 자리라는 것을 눈치챘다. 자리를 잡고 이효정 선생님과 함께 점심을 먹었다. 금방 떡을 먹은 데다가 밥이 양이 많아 배부르게 먹었다. 가져온 참외도 먹기 좋았다. 배가 너무 부르면  올라가기 힘이 든다. 그래도 먹어두는 것이 좋다. 점심을 먹고 바로 출발했다. 점심을 먹고 모산재(767m)까지는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모산재에 이르니 멀리 철쭉 평원이 보이고 드디어 만개한 철쭉이 능선을 뒤덮은 장관을 바라볼 수 있었다. 평평한 능선길이  좌우로 온통 붉은 색깔을 칠해 놓은 것처럼 불타오르고 있다. 마치 붉은색 물감을 몇 단지 엎질러 놓은 것으로 착각할 만했다. 모산재 주변의 드뭇한 철쭉도 푸른 소나무와 어울려 아름답기는 마찬가지였다.

 

 정말로 산은 어떤 위력을 지녔기에 이런 색소를 내품는 것일까? 꽃은 어느것이고 추한 것이 없다.  무슨 색깔, 어떤 모양으로 피어도 꽃은 아름답다. 사람들이 '호박꽃도 꽃'이니 하면서 험담을 하지만 그것도 모르는 소리이다. 아침 햇살을 받아 피어나는 호박꽃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어떤 재주를 가진 사람도 그런 노란색을 만들어 내지 못할 것이라는 걸 알 것이다. 그리고 누구도 쪼글쪼글하면서도 맨질맨질한 호박꽃의 미를 흉내조차 내지 못할 것이다. 철쭉도 진달래에 비해 경원시하지만 이렇게 군락으로 피어나면 그 붉음을 누가 흉내낼 것인가?

 아, 이 환상

 

철쭉은 능선을 따라 철쭉 평전을 지나 황매산 정상을 향해서 끊임없이 피었다. 다만 정상 바로 아래 황매 평전은 목장과 이어지는데 임도가 나서 보기에 안좋았다. 더구나 목장에서 철쭉평전에 이르는 산면에는 산불이 났는지 바닥에 흔적이 있었다. 상처난 산이 가슴 아프다. 임도에서 정상에 이르는 길은 철쭉꽃 위로 널판지로 길을 내어 꽃을 보호하고 있다. 길 위에 황매산 제단이 있다. 거기서도 사람들은 황매산 철쭉이나, 정상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사람들은 꽃 속에서 사진을 찍느라 야단이다. 정상에 오르는 나무 사다리에는 사람들이 개미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다.

 

안내하는 사람들이 정상에는 가지 말고 바로 하산하라고 전갈을 보내왔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 시간이 지체될 것을 걱정해서일 것이다. 정상을 가지 못해 아쉽기도 하지만 나는 힘이 들어 그렇게 하려고 마음 먹었다. 그런데 이효정 대장은 정상을 가지 않는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고 생각해서도 안되는 일로 여기고 있는 눈치이다. 묵묵히 따르다가 나는 그냥 산불 감시 초소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이 대장은 성큼성큼 가벼운 발걸으로 정상을 행했다. 나도 갈 수는 있지만 이 정도를 걷고 꼭 백두대간한 구간을 마쳤을 때 만큼 힘이 들었다. 그래서 가고 싶은 마음을 돌리기로 했다. 아직은 자제해야 할 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정상 바로 아래 제단에서 아쉬운 발걸음을 뒤로 돌아 베틀봉으로 향했다. 아주 여유있게 천천히 걸었다. 온 세상이 온통 다 철쭉이다. 산불 감시초소가 있는 베틀봉 팔각정에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한참을 기다리다가 아무래도 안되겠어서 혼자서 하산하기로 했다. 마침 여성 회원 두 분이 앞서 가기에 따라 나섰다. 그들은 아침에 내가 '느림보'라고 인사를 해서인지 나를 알아보았다. 내리막길에 무릎이 아픈 것으로 봐서 운동을 하지 않는 동안 체중이 많이 늘어난 모양이다. 885봉으로 올라가는 능선길에 철쭉이 절정을 이루고 있다. 사람들은 아예 꽃밭으로 들어서서 사진을 찍느라고 난리다. 모두가 쌍쌍이 온 모습이다. 예상했던 대로 이곳의 철쭉은 소백산이나 금수산 철쭉과는 다른 종류였다. 지난번에 올라간 보현산 철쭉과도 다른 종류이다. 고산지대에 피는 연분홍색 철쭉이 아니다. 이렇게 군락으로 피어 있지 않으면 그렇게 아름다워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철쭉 평전과 황매산 정상 

 꽃의 세계

 가까이에서

 조금 더 멀리

 주변이 꽃다운 느림보

 

885봉에서 천황재로 내려오는 길은 가파르고 험하다. 먼저 다녀온 연선생이 황매산은 그냥 산책길이라고 해서 스틱을 가져 오지 않았는데 후회되었다. 길은 아주 험하고 경사도 급하다. 자칫하면 절벽으로 굴러 떨어질 것 같았다. 내리막길이 돌길이라 발을 삐끗할 위험성도 컸다. 이름난 산꾼에다가 마라토너인 연선생의 산책길은 이 정도라는데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천황재에서 당연히 감암산을 거쳐 칠성바위, 누룩덤으로 하산하는 줄로 알았는데 천황재에서 김조영 선생 일행을 만나 그들을 따라 거기서 바로 왼쪽으로 돌아 대기마을로 내려오는 길을 택했다. 그러면서도 마음은 찜찜했다. 내려오는 길은 숲이 우거져서 키가 큰 나는 아주 불편하다. 길도 질러오는 길이 아닌 모양이다.

 

마을에 이른 곳에서 차가운 물에 발을 담가 찜질을 했다. 시원하다. 돌아보니 봉우리에 해가 걸렸다. 마을은 아주 한적해 보인다. 초등학교 운동장에서는 동문체육대회를 끝내고 노래자랑을 벌이고 있는 모양이다. 학교 앞 공터에 세워놓은 관광버스 옆에서 맥주를 마셨다. 마시면 안된다는 걸 알면서도 주는 대로 꽤 여러잔 마셨다. 말하자면 1월 2일 이후 처음으로 술을 마시는 것이다. 조금 걱정이 되었다.

 

버스를 타고 돌아 오는 동안 한 시간 정도를 달게 잤다. 꽃은 좋았지만 나에게는 절반의 산행이라 개운하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더 근력을 회복해야겠다.

 

 대기 마을로 내려와 되돌아 보니

 냄새까지 구수한 밀밭

 철망 속의 작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