것대산이나 바라보며 -병상에서 4일째
2월 16일(월요일)
개학날이다. 바깥 날씨는 따뜻해 보인다.
지난밤에 오한과 식은 땀이 났다. 환의가 다 젖었다. 새벽에 일어나서 화장실에 가는데 선뜩선뜩했다. 오른쪽 가슴이 옆으로 누울 수 없을 만큼 아프다. 괴롭다. 참 괴롭다.
젊은 내과 의사 한 사람이 올라와서 내가 찍을 사진에 대하여 설명을 했다. 환부를 정확히 진단하기 위하여 염색을 한다고 한다. 주사를 맞는데 반응 검사를 미리 하기 때문에 큰 사고가 없기는 하지만 약 10만분의 1 정도가 사망한다고 한다. 그러니 별거 아니라고 말하지만, 내가 10만분의 1이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꼭 해야 한다면 하겠지만 안해도 된다면 굳이 그 확률 안에 나를 집어 넣을 필요가 있을까? 그러나 아내에게 서명하라고 했다. 아내는 의사를 믿고 서명을 했다. 이렇게 의사를 쉽게 믿는다. 아니 몸이 아프면 쉽게 나를 포기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곳에 들어와서 암으로 죽는 날을 받아 놓은 사람들도 악착같이 내일을 기대하면서 투병 생활하는 사람들의 그 무모함에 존경의 마음이 생겼다. 이렇게 무의미하게 앉아 있어야 하는데----. 1년이고 2년이고 말이다.
지하 방사선과에 가서 그 엄청난 CT를 찍었다. 방사선 기사는 주사를 놓기에 앞서 이상한 반응이 있으면 즉시 말하라고 했다. 그러나 그들은 비상시를 예상해서 아무런 준비를 해놓지 않았다. 예를 들면 응급 조치를 할 수 있는 의사가 대기한다든지 하는 조치를 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그러면서도 주사약은 순간적으로 빨리 들어가는데 갑자기 가슴이 뜨끈뜨끈해질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주사를 언제 놓았는지 알 수 없을 만큼 아무런 반응이 나타나지 않았다.
병실로 올라오니 바로 소변이 보고 싶었다. 긴장했던 탓인가? 화장실에 가서 거울을 보니 얼굴이 온통 붉은 반점 투성이다. 주사약 반응인지, 스트레스인지 모르겠다. 바라 볼 수 없을 정도이다. 오후에 저절로 없어졌다. 그제야 발진 방지 주사를 놓았다.
발진의 원인을 검사하기 위해서 또 채혈을 했다. 아마도 아레르기 검사를 할 모양이다. 오후 과장 회진에서 CT결과는 양호하다고 설명했다. 그냥 약으로 치료해도 되겠단다. 혈농을 물리적으로 뽑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겠지. 일단 안심했다. 그러나 시일은 더 오래 걸릴 테지.
학교에 전화를 해서 내가 준비해 놓은 학년초 것들을 진행 하도록 부탁했다. 이것저것 메모를 해야 할 정도로 차근차근 얘기했다. 어렵지 않은 것은 전화받는 분이 어렵지 않은 분이기 때문일 것이다.
교장 선생님과 행정실장님이 문병을 오셨다. 나는 진심으로 미안했다. 인사발령 공문을 복사해서 가져오셨기에 궁금했던 대충의 인사 윤곽을 알 수 있었다. 퇴근 시간에 맞추어 행정실의 직원들과 가까운 몇분 선생님이 오셨다. 신, 최, 전 선생이 함께 왔고, 조금 있다가 이, 박, 손 선생님이 오셨다. 나는 학교일보다 아이들에게 미안했다. 마지막 한 주에 정리해 줄 것을 마무리하지 못해서 말이다. 저녁에 김용승 선생님이 오셔서 한 시간 쯤 놀다 가셨다. 시름을 많이 잊었다.
저녁에 이용원 선생님 내외분, 안중묵 선생님 내외분이 오셨다. 초등학교 동창회장과 총무, 그리 친구 윤효중이 왔다. 윤계장이 내가 원하는 김팔봉문학연구에 대한 논문을 가져 와서 더 반가웠다.
괴롭지만 발령난 몇 분에게 전화를 했다. 셋째 누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걱정 마시라고 안심시켜 드렸다.
아픈 중에도 그거라도 잊기 위해 논문을 읽었다. 밤 열시쯤 아내를 집으로 쫓았다. 그래야 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