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생활과 일상/것대산이나(病床일기)

것대산이나 바라보며 - 병상에서 2일 째-

느림보 이방주 2009. 3. 23. 12:10

2월 14일 토

아내도 나도 어색한 방에서  어색한 밤을 새우고 날이 훤히 밝았다. 밤새 왱왱거리던 텔레비젼은 여전히 그의 소임을 다하고 있다. 별로 아프지도 않아 보이는 그 환자는 창가에 동전을 쌓아 놓고 있다. 텔레비젼이 죽어가면 '쩔그렁' 하면서 동전으로 밥을 먹였다. 아침이 되자 창가에  주인처럼 누어있던 그 친구가 익숙하게 커튼을 걷었다.  멀리 낙가산에서 것대산에 이르는 한남금북정맥의 능선이 밝아 오는 하늘에 검은색 선을 선명하게 긋고 있었다. 그 능선길을 몇 번이나 걸었나?  청남학교 운동장에는 아직 아이들이 없다. 학교 운동장 건너 편에 낮은 동산이 있다. 자동차 달리는 소리가 아주 가까이 들린다.

 

배가 몹시 고프다. 나는 새우잠이 든 아내를 본다. 그 좁은 침상에서 몸을 있는 대로 다 웅크리고 새우잠이 들었다. 깨우고 싶었으나 참았다. 5시 30분이다. 그 친구가 힐끗 아내의 자는 모습을 쳐다본다. 발을 겨우 들어서 내 병상 아래에서 자는 아내를 깨우려고 하는 찰라, 아내도 그 거북한 시선을 느꼈는지 일어났다. 근심스런 눈빛, 아내들은 누구나 오십을 넘어서면 그렇게 어머니가 된다. 그런데 왜 사내들은 오십을 넘어서면 아이가 될까?  아내를 졸라 집으로 보냈다. 토요일이지만, 아들이 혹 출근하더라도 제가 다 할 수 있는 나이지만, 챙겨줄 것은 챙겨줘야 하고, 준비없이 달려온 아내는 집에 가면 또 다른 할 일이 있을 것이다. 빨리 가라고 쫓았다. 일곱시에 밥이 나온다니까 밥을 먹는 것을 보고 간다고 우겼다. 내가 다 알아서 먹을 수 있으니 가라고 거짓  짜증을 내다시피해서 집으로 쫓았다.

 

온몸이 두드러기다. 주사 바늘하나에 줄 두 개가 온몸을 감는다. 두드러기가 뭉쳐 목이 더 굵어졌다. 미칠 것 같이 가렵다. 그러나 긁지 않았다. 참고 견뎌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온몸이 온통 울퉁불퉁하다. 누구에게도 보이기 싫다. 안경을 벗으니 눈가와 볼에도 발갛게 일어났다. 몸집은 우람해도 목소리는 여리고 예쁜 간호사가 보면서 웃었다.

"엄청 간지럽겠다."

"아뇨."

"안 간지러우세요?"

"예."

그는 가려운 것을 간지럽다고 표현했다.

 

새벽에 주사를 두 대 맞았다. 이름이 뭔지 모르지만, 어렸을 때 지병으로 고생하시던 당숙모가 맞던 그런 병에 들어있는 것이다. 작은 병에 고무 마개를 하고 쇠붙이 마개로 다시 한번 두른 그런 병 말이다.항생제라고 한다. 그런데 같은 약을 왜 두 병이냐고 물었다. 선생님 처방이란다. '그렇게 심한가?  주사 바늘을 병에 찔러 약물을 빨아낸 다음 내가 맞고 있는 링거 줄에 찔러 넣었다. 주사약이 줄어들면서 싸르르한 기운이 혈관을 타고 팔을 거슬러 올라간다. 밥을 먹기 전에 바늘을 찔러 피를 네 그릇이나 뽑아 간다. 포도당 액을 바꾸고 나더니  주먹만한 약병을 두개를 더 매달았다. 이건 뭐냐? 읽어보니 생리식염수라고 쓰여 있다. 웬 생리식염수냐? 소금을 그냥 먹으면 되는데. 그런데 거기에도 항생제가 섞여 있다고 한다. 항생제를 생리식염수에 섞어서 천천히 주사를 놓는다고 한다. 간호사 말에 의하면 하루에 네병을 맞아야 한단다. 온몸이 초토화되는구나.

 

아침 식사가 나왔다. 식반에 밥과 국이 있고, 반찬이 네 가지이다. 식반 위에  '단백질 제외'라는 딱지가 있다. 소름이 끼친다. 밥도 저단백질이라면서 보리도 콩도 섞지 않았다. 하얀 쌀밥이다. 싱겁다. 반찬이 먹을 게 없다. 싱겁고, 달고, 얼큰한 맛이라곤 찾을 수가 없다.  밥은 그래도 금년산 쌀로 지었는지 기름이 흘렀다. 그냥 먹었다. 밥맛으로도 맛이 있다. 병상에서도 시장이 반찬이다. 건너편 친구는 구운 김에 밥을 싸서 먹었다. 하얀 쌀밥이 기름 발라 구운 김을 싸서 먹으면 입술에 까만 김부스러기가 묻은 것을 보면 보는 사람도 침이 넘어간다. 아마 우리 아내도 무슨 반찬이라도 가져올 것이니 점심부터는 잘 먹을 수 있다. 고열에 바짝 마르는 입술에도 내 무서운 식성은 변하지 않는다. 거의 맨밥으로 밥 한 공기를 뚝딱 해치웠다. 어제 저녁밥을 거른 탓도 있지만 이럴 때 나는 변치않는 그 식성이 고마웠다.

 

CT(컴퓨터단층촬영)를 찍으러 갔다. CT는  촬영해 본 경험이 있어서 긴장하지 않았다. 그러나 염증 속에 든 것이 혹시나 암덩이가 아닐까 조금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어머니께서 배가 고프시다며 당신이 계시는 능동 선산으로 나를 불러간 것이 아닐까 하고 지난 밤 꿈에 대하여 심각한 의미를 부여했다. 촬영은 아주 간단히 끝났다. 그러나 방사선 기사가 '숨 참으세요.'하고 외칠 때마다 실제로 온몸을 무채를 썰어내내는  기분이었다. 숨을 참을 때도 크게 들여 쉴 때도 가슴은 찢어진다. 촬영대에서 일어나 나오는데 내 몸이 썰어놓은 단무지 조각이 된듯 '뚝-' 아래로 떨어졌다. 기사가 붙잡아 주었다.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는 듯했다.

 

내 몸에 물을 확 끼얹는 기분이다. 병이 불이라면 불을 끌 때 양의는 물을 한 동이 끼얹어 꺼버린다고 한다. 한의는 입으로 훅 불어서 끈다고 한다. 그러니 양의의 불은 꺼지더라도 불타던 자리가 만신창이가 된다. 한의는 입으로 부는 바람의 세기를 잘못 조절하면 불이 더 활활 타게 마련이다. 그런데 불이 꺼지더라도 타던 자리는 그대로다. 일장인단이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내몸은 항생제로 점점 꺼져가는 기분이다.

 

기운이 없는 것도 아닌데 환자들이 이동할 때 쓰는 링거 걸개를 지팡이 삼아 짚고 병실로 올라 왔다. 아내는 밥이나 먹고 왔는지 그새 와서 가방만 놓고 사라졌다. 나를 찾으러 갔겠지. 아내가 왔다. 상기되어 있다. 역시 지하 방사선실에 갔다 오는 길이 어긋난 것이다,

 

10시 넘어 내과 과장이 회진을 도는데 병실에는 오지 않고 간호사실에서 아내만 불렀다. 나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왜 가족만 먼저 불러 얘기하는 것인가? 머리가 싸늘해지는 기분이다. 이마에 식은 땀이 났다. 그러면서도 '12월에도 깨끗했는데' 하고 위안을 했다. 그래도 아무것도 아닌 척 태연한 모습으로 누워 있었다. 아내는 바로 병실로 돌아왔다. 깊은 병으로 의심하기로는 너무 빨리 왔다. 눈을 살폈다.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사진의 흰덩어리 가운데 색깔이 다른 덩어리도 결국은 암덩어리는 아니란다. 폐렴이 오래 되어서 그렇단다. 그래도 확실하게 알아보기 위해서 다시 촬영을 해본단다. 그게 좀 의심이 간다. 과장은 청진기를 대보더니 어제보다 훨씬 숨소리가 좋아졌다고 한다. 위로의 말이었다. 아직은 가슴이 뜨끔거려 죽겠는데 무슨 말이냐? 그러나 의사는 약으로만 병을 낫구는 것이 아니라 말로도 한 몫하는 것이니까---. 열은 조금 내렸단다. 37.8도, 37.4도. 오후에 또 채혈을 한다. 수시로 변화를 측정해야 한다고 한다.

 

월요일인 16일부터는 수업을 해야 한다. 겨울방학을 끝내고 개학이다. 일주일간 더 정규수업을 해야 학년말 휴가에 들어간다. 그러나 나는 어쩔 수 없다. 이번에 임용고시에 합격한 전에 전산실 조교였던 전선생에게 내 대신 수업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쾌히 승락한다. 일주일이니까. 교감 교장 선생님께 입원 사실을 말하고, 전선생 수업 건도 알려 드렸다. 모두 놀란다. 

 

정우종 선생님 내외분, 이완호 선생님 내외분이 문병을 오셨다. 백만사 동지들이다.  미안하다. 먹을 걸 많이 사오셨다.  한참 떠드는 동안 아픔도 잊었다. 눕고 싶을 때쯤 그분들이 가시겠다고 했다. 내 표정에 나타났는지 뭔가 들킨 기분이다. 그런데 그때 형님이 오셨다. 내륙문학 회의 진행 과정을 상세히 들었다. 간호사들은 신이 나서 병실을 들락거리는 것처럼 보인다. 모처럼 그들에게는 중병환자가 들어온 모양이다. 그러나 나는 중병이란 생각을 하나도 하지 않았다. 그냥 일주일이나 길어야 열흘이면 된다고 생각했다.

 

밤이 깊어 텔레비젼은 여전히 앵앵거리고 나는 열이 오르내리고, 기침은 계속되고, 가슴은 찢어질 듯 아프다. 기침을 하면 가래가 생기고 가래에 피고름이 섞여 나왔다. 처음이다. 간호사가 받아 갔다. 가슴이나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또 억지로 잠을 청하며 내일을 기다리자.  잠들만하면 오줌이 마렵고, 또 다시 잠이 들만하면 간호사가 귀에 체온계를 꽂았다. 한참을 뒤척이다가 또 잠을 청하자면 생리식염수를 바꾸어 매단다. 이제 어디론가 가는 연습의 시작이거니 하는 방정맞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마음은 한없이 편안하다.  책상에 아무것도 쌓인 것이 없어 좋다. 아무도 지시하는 사람도 허락 받으러 오는 사람도 없다. 그냥 누워 있으면 된다. 아, 그냥 누워 있는 것 그것은 바로 ---- 말하기 싫다. 나도 죽음 앞에서는 담담해지지 못하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