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보 이방주 2008. 8. 18. 21:35
철쭉처럼

 

중부매일 jb@jbnews.com

 

철쭉꽃은 모든 사람들로 아름답다는 찬사와 함께 사랑도 받고 있다. 철쭉꽃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치 잘 지은 한 편의 수필을 읽은 듯 산뜻한 기분까지 든다. 개성도 강한 식물이다. 철쭉이 무리지어 피어있는 모습을 보고 탄성을 지르지 않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 남들은 쉽게 오르는 수필문학이라는 산도 내게는 어렵기만 했다. 수필문학에 빠져든 게 언제이던가. 적지 않은 세월이 지났건만 앞을 가로막고 서 있는 수필문학이라는 산은 높고 험하기만 하다. 남들은 쉽게 오르는 길이 내게는 왜 그리 힘겨울까. 황매 평전에 붉게 핀 철쭉꽃처럼 화사하게 피어날 날이 오기나 하려나.
나도 철쭉꽃처럼 남에게 읽히는 작품, 사랑받는 작품을 써보고 싶었다. 그게 어디 마음만으로 써지는 글이던가. 뼈를 깎는 고통, 피를 말리는 듯한 노력을 하지 않고 요행만을 바라지 않았던가. 철쭉처럼 짓밟히면서도 다시 일어나려는 노력을 해보았던가.

힘겹게 모산재를 향해 오른다. 길도 가파르고 마사토가 깔려있어 미끄럽다. 잘못 내딛으면 미끄러지기 일쑤다. 전국에서 온 형형색색의 옷을 입은 등산객들 틈에 끼어 오르는 길은 힘겹기만 하다.

앞 서 가던 사람들이 주춤거린다. 힘이 든다는 증거다. 조금 더 올라가니 입구의 길을 가득 메웠던 사람들이 이제는 헐렁하게 느껴진다. 다수는 앉아 쉬고 또는 걸음을 늦추는 것이리라. 나도 힘이 들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뒤처지면 따라가기 힘들다는 생각이 발걸음을 재촉한다. 수필문학도 마찬가지로 글을 써 보겠다고 시작하는 사람은 많으나 중도에서 포기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수필문학이 내게는 높은 산을 오르는 것만큼이나 힘겹다.

왜 이렇게 힘들게 산을 오르는 것일까. 도대체 산위에 무엇이 있기에 저처럼 많은 인파가 비지땀을 흘려가며 산을 오르려 하는 것일까. 정상을 오르는 길은 멀고 험하기만 하다.

경상남도 합천군에 위치한 황매산, 그 평전엔 철쭉꽃이 화사하게 피어있었다. 어저께 인터넷으로 확인한 사실이다. 어찌나 붉고 아름답던지 그 황홀함에 입을 딱 벌리고 한 동안 멍하니 바라보았었다. 급기야 새벽에 애마를 몰고 달려오지 않고서는 배길 수 없었다.

모산재를 거의 올라왔을 때 눈길을 끄는 게 있었다. 커다란 암벽에 홀로 피어있는 철쭉꽃! 양분을 제대로 얻어먹지 못한 탓일 게다. 키가 한 뼘 정도밖에 자라지 못했다. 물기조차 메마른 바위 틈서리에서도 꽃을 피워 올려 보는 내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멀리 황매평전에 붉게 핀 철쭉꽃의 향이 전해진다. 철쭉꽃은 향이 없지만 멀리서도 느낄 수 있는 붉은 색깔을 보고서 그리 느꼈을 뿐이다. 산의 정상부근을 붉게 물들이고 있는 철쭉, 저 곳이 그토록 보고 싶었던 철쭉군락지란 말이지, 붉게 물든 산을 바라보자 힘이 솟았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철쭉은 군락을 이루고 등산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철쭉은 제 몸을 보호할 수 있는 능력도 가지고 있다. 초식 동물들이 다른 풀들은 나무 채 뜯어먹어도 철쭉나무는 뜯어먹지 못한다. 아름다운 장미에 가시가 있듯이 철쭉에게도 독성이 있기 때문이다. 철쭉꽃에 독이 있다는 사실은 대부분 알고 있는 사실이다. 어렸을 적에 철쭉꽃을 진달래꽃으로 잘못 알고 따먹었다가 구토를 한 기억도 새롭다.

한 무리의 등산객들이 앞질러 올라간다. 그들은 스치듯 잘도 올라간다. 어떻게 하면 저렇게 쉽게 올라갈까. 나도 저들처럼 겅중겅중 올라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남들은 쉽게 오르는 수필문학이라는 산도 내게는 어렵기만 했다. 수필문학에 빠져든 게 언제 이던가. 적지 않은 세월이 지났건만 앞을 가로막고 서 있는 수필문학이라는 산은 높고 험하기만 하다. 남들은 쉽게 오르는 길이 내게는 왜 그리 힘겨울까. 쥐꼬리만 한 지식을 가지고 남들을 따라가려하니 벅찰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아직도 수필문학의 초입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저 높은 곳엔 언제쯤 도달할 수 있으려나. 황매 평전에 붉게 핀 철쭉꽃처럼 화사하게 피어날 날이 오기나 하려나.

나는 철쭉처럼 독성을 가지지도 못했다. 지금껏 써 온 글은 나만의 독특한 개성도 없이 독자들에게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하고 겉돌기만 했다.

한 때 수필을 쉽게 쓰는 방법을 알려고 노력했었다. 하지만 누구도 그 답을 가르쳐 주는 사람은 없었다. 쉽게 쓰는 방법이 없나보다. 혹자는 붓 가는대로 쓰면 수필이 된다고 말하는 이도 있었지만 내게는 아니었다. 그리 쉽게 써지지도 않을뿐더러 그렇게 쓴 글이 수필이 될 수도 없었다.

정상을 오르는 길은 멀고 험하고 어렵기만하다. 남에게 읽히는 글을 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향기 있는 글이라는 소리를 듣기는 더욱 어렵다. 다시 힘을 내어 황매산을 향해 오른다. 저 멀리서 붉게 핀 철쭉꽃이 나에게 어서 오라고 손짓을 하지만 좀처럼 손에 잡히지 않고 마음만 급하다. 여기까지 와서 결코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 아무리 힘들고 외로워도 나는 황매산 정상에 피어있는 철쭉꽃을 보기위해 이 길을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