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보 이방주
2008. 6. 30. 21:48
사진 |
중부매일 jb@jbnews.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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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은 크게 빗나가지 않았다. 작은 눈에 굳은 표정, 걱정했던 대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진을 받아든 딸애의 표정이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낭패한 얼굴이었다.
고등학생이 된 딸애의 증명사진을 찍으러 갔다. 찍고 나면 늘 마음에 들지 않아 속을 태우는 딸애가 이번에는 컴퓨터로 보완을 해주는 이미지 사진을 찍자고 한다. 내친김에 나도 찍을 요량으로 따라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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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부슬거리던 빗방울이 오후가 되니 무거워졌다. '이미지 사진' 이라고 쓰여 있는 간판 앞에 줄을 지어 기다리는 사람들이 보인다. 학기 초라 학생증 사진을 찍는 학생들과 간혹 연인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대기번호표를 받아들고 사진관에 걸려 있는 사진을 보니 정말 예쁘지 않은 얼굴이 없다.
한결같이 눈이 크고 얼굴도 갸름하고 콧날도 오뚝하다. 갈수록 서구적으로 바뀌는 얼굴들이 모두 비슷하다. 조각칼로 새긴 것처럼 섬세하게 찍힌 사진이 실재 인물이라면 이 세상에 못 생긴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 같다.
예쁘게 잘 나온 전시사진을 보면서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된 여권을 만들 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를 하고 밀실로 들어가니 사진기사가 있다. 눈을 크게 뜨고, 턱을 오른쪽으로, 조금 더, 사진기사의 요구대로 근육을 움직이며 제법 자신 있는 자세를 취했다.
살면서 남에게 선보여야 할 사진이나 증명서에 붙일 사진을 찍어야 할 때가 있다. 그런데 이제껏 내 손에 쥐어진 증명서에 붙은 사진이 마음에 들어본 적이 없다. 긴 시간을 공들여서 잘 찍었다고 생각을 했는데도 사진이 나오면 늘 불만스러웠다. 눈이 작게 나오거나 짝눈이 되기도 하고 인상을 써서 표독스러워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웬만하면 사람이 많은 장소에 가면 주민등록증이나 면허증을 내보이지 않는다.
사진 찍는 일도 예술인데, 예술가가 찍는 사진이 왜 하나같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사진을 제대로 찍어내지 못한다면 사진가로서 자격 미달이 아닌가. 사진을 받아 들고 나면 꼭 착각에 빠지게 된다.
예쁘게 나오지는 않더라도 내 본 모습 그대로는 찍어주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불만을 토로하면 남편이나 딸은 "잘 나왔네, 표정이 굳어서 그런 거야"한다.
사진이 잘 안 나온다며 며칠 전부터 걱정을 하던 딸애가 사진을 받고 나선 말이 없다. 학생증에 스티커를 붙여서 사진을 가리고 다니던 딸애가 이미지사진이라고 해서 큰 기대를 했던 것 같다.
실망스러워하는 딸애의 얼굴을 보며 사진가가 살아있는 표정을 제대로 찍어내는 일이나 글 쓰는 작가가 마음속을 제대로 표현하는 일이나 같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사진작가는 사람의 얼굴을 찍어내는 것이지만 작가는 마음을 찍어 내야 한다. 가슴에 매달려 있는 슬픔이나 기쁨, 과거와 미래, 희망까지도 진솔하게 찍어내는 일이 수필을 쓰는 작가의 몫이다. 가끔 남편으로부터 집안 이야기 좀 쓰지 말라는 말을 듣는다. 다른 장르와 달리 수필은 자신이 경험한 사실을 바탕으로 솔직하게 쓰는 글이니 아무래도 집안 내력이 드러나는 편이다. 그래서 수필집 한 권을 읽어보면 작가가 어떻게 사는지 성향은 어떤지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만큼 글은 작가의 삶이 녹아나야 감동을 준다. 마음을 살뜰하게 살펴서 보석 같은 언어를 건져내어 글에 생명력을 주어야 한다.
사진을 찍어 주던 그 젊은 사진 기사는 어떤 마음으로 사진을 찍었을까. 정말 순간순간의 표정까지 놓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찍기는 한 것일까. 사진을 받아들고 내 모습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내가 내 작품을 돌아본다. 발표작이나 미발표 작품이나 내놓고 나면 늘 부족하고 부끄럽다. 사진작가의 마음도 같으리라. 사람의 내면까지 찍어, 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 사람의 표정과 생각까지 완벽하게 잡아내어 찍었을 때에 비로소 완전한 작품이 되는 것이다.
눈이 작게 나오고 퉁명스럽게 나와 돈만 비싸고 이미지 사진도 믿을 것이 못 된다며 속상해하는 딸을 보며, 나도 마음이 아닌 손으로 쓰는 글은 쓰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손이 아닌 가슴속에서 우러나 감동을 줄 수 있는 글을 쓰기 위해 내 감각기관을 더 길들여 마음을 찍어내는 연습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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