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답사/한국의 사찰

불갑사의 가을

느림보 이방주 2007. 9. 30. 11:56

9월 23일

 

  어제 빗길의 정선 여행의 피로가 남았다. 이상하게 푹 자고 일어났는데도 피로감이 가시지 않는다. 오늘 또 일찍 일어나 여섯시 반에 친구를 만나 영광의 불갑산의 용천사와 불갑사의 꽃무릇 축제를 보고 법성포에 가서 굴비정식을 먹기로 했다. 아침은 먹지 않고 김밥으로 차 안에서 때우고, 법성포 굴비 정식으로 포식을 하기로 했다. 오늘은 운전을 하지 않으니 편할 것이다. 더구나 고속도로 여행이기 때문에 산골길보다 위험이 덜하다. 다만 연휴 이튿날이라 호남고속도로가 정체되지 않을까 걱정을 했지만 도로도 훤하게 뚫렸다.

 

  아침에 수곡동에서 친구를  만나 내 차 네비게이션을 떼어 친구 차에 달고 내차를 그 자리에 세워 두었다. 친구는 최근 새로 사준 딸내미 차를 끌고 간다고 했다. 모처럼 타보는 세단이 참으로 좋았다. 소리도 없고 승차감도 좋다. 그러나 나는 무쏘를 버리지 않는다. 

 봄에 갔던 불갑사 저수지-이른 가을 비가 내린다

  불갑산 불갑사는 봄에 한 번 간 적이 있다. 그 대는 절보다는 불갑산을 올라갔다. 연실봉까지 갔다가 내려왔는데 연실봉 등산로인 불갑사 뒤편 골짜기가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방죽이 있고 방둑 둑에는 새싹이 파릇파릇 나왔고 등산로 옆 느티나무에는 봄비가 맺혀 물방울이 떨어졌다. 그리고 주변에는 꽃무릇 새삭이 무성했다. 그 때 이미 우리는 오늘을 약속했었다. 꽃무릇의 싹이 스러지고 가을이 되어 꽃대가 오라와 빨갛에 �이 피면 다시 오기로 말이다. 이 꽃은 잎과 꽃이 만나지 못해서 상사화라고도 한다. 그러나 오늘은 주변에 있는 용천사를 먼저 들러 불갑사로 가기로 했다.

 

  용천사는 처음 가보는 곳이다.  용천사는 영광군이 아니라 함평군에 속해 있다. 친구 연선생은 마라톤을 하면서 전국 경치 좋은 곳은 뛰어보지 않은 곳이 없으므로 길 찾는데는 귀재라고 할 만하다. 내가 길눈이 어두운데 비해서 정말 걸어다니는 네비게이션이라고 할 만하다. 그러나 사실 발로 뛴 그 길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도 이상하지 않은가? 나는 네비게이션을 달면서 길눈이 더 어두워졌다. 지도를 미리 살펴 머리에 그 길을 기억하면서 운전하면 부근까지 통찰할 수 있는데 네비는 빨간 줄만 보면서 따라가기 때문에 다녀 온길도 기억하지 못한다.

 

 용천사 진입로

 

  호남선 함평나들목으로 빠졌다. 용천사를 먼저 가야하기 때문이다. 함평 나들목에서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 용천사가 있었다. 촉촉하게 젖은 포장도로를 승용차는 미끄러지듯 달린다. 우리는 차 안에서도 쉬지 않고 이야기하고, 쉬지 않고 무엇이든지 먹기도 하였다. 비에 젖은 가을 경치를 바라보며 감탄하기도 하였다. 여기저기 비바람에 엎친 벼는 누운채로 누렇게 변해 가는 모습이 안스럽다.  용천사로 가는 도로 양쪽은 온통 붉게 불붙은 듯 꽃무릇이다. 진입로에 들어서자 �무릇은 붉은 피를 흘려놓은 듯이 세상을 온통 붉은 색으로 물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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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천사 대웅전, 금강문, 주위의 꽃무릇

  용천사에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보니 우산을 쓴 사람들이 북적인다. 우리도 마찬가지이지만 휴일이 충분하지 않은 우리들에게는 한가위 연휴도 황금이다. 주변의 산도 모두 꽃무릇이고 길가, 절집 주변 어디고 꽃이 피지 않은 곳이 없다. 꽃은 지금 막 지기 시작하는 것 같다. 그러나 금강문으로 오르는  계단 양쪽에는 아직 피지 않은 봉오리들도 있었다. 이제 막 피어난 것들이 이슬비를 함뿍 머금고 있는 모습이 아름답다. 사진 몇 장을 찍으면서도 내 사진 서툰 솜시가 원망스러웠다.

 

  꽃무릇은 사람들이 다 상사화로 알고 있다.  상사화와 생태도 같고 꽃 모양도 같고 알뿌리 모양도 같아서 상사화라 해도 별 잘못일 거는 없지만 상사화는 엷은 분홍색도 있고 노랑색도 있는데

이렇게 흐드러지게 피지는 않는다. 한 송이 한송이 꽃을 보면 이보다 더 예쁘지만  이렇게 절 주변의 산을 뒤덮지는 않는다. 무리지어 피는 꽃이 아닌 걸로 알고 있다. 고향집 화단에도 몇 송이 피었고, 학교 화단에도 올 여름에 피었다 졌다. 그러나 자연적으로 이렇게 엄청나게 번식하지는 않는다. 꽃무릇은 일본에서 들여와 절에 많이 심었는데,  줄기에서 나오는 녹말로 만드는 풀로

불경을 붙이거나 탱화를 붙이는데 썼다고 한다. 또 꽃무릇은 '석산'이라는 이름이 본래에 이름이라고 한다. 잎과 꽃이 서로 만나지 못하는 식물로  상사화와 같은 생육상의 특이성이 있다.

 

  지방에 따라 서는 꽃무릇·지옥꽃이라고도 부르며, 피처럼 붉은 빛깔의 꽃과 알뿌리의 독성 탓에 죽음의 꽃으로 여겨져 왔다. 그래서인지 꽃말도 두 번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죽은 사람을 그리워하는 ‘슬픈 추억’이다. 영천사 경내는 온통 붉은 빛이다. 우리는 경내를 돌아 절 뒤를 올라가다가 숲 속을 꽃을 본 다음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사진을 여러장 찍어서 사진기에서 붉은 물이 뚝뚝 떨어질 것만 같다.

 

 불갑사 천왕문(불갑산에 어리는 구름)

 

   용천사에서 영광  불갑사는 20분 거리도 되지 않는다. 용천사는 함평에 있고 불갑사는 영광에 있지만 바로 거기다. 용천사에서 꽃무릇을 눈에 붉은 물이 들 정도로 많이 보았지만 봄에 들렀던 불갑사 꽃무릇도 궁금했다. 또 용천사에 비해 절의 규모도 훨씬 크고 아울러 꽃도 더 많이 피었을 것 같았다.

 

  불갑사에 도착하니 꽃무릇 축제 개막식 날인지 입구에 행사 준비를 하는 사람들이 부산하게 움직인다. 여러가지 지역 특산물을 판매하는 천막이 즐비하다. 사람들이 북적인다. 주차 관리 하는 사람이 차를 세우더니 안으로 들어가란다. 행사를 위해서는 일주문 안으로 차량을 통행하게 하는 모양이다. 친구는 아마도 군수가 참석하나보다고 했다. 차를 천왕문 바로 앞에 스님들이나 주차하는 곳에 대었다. 천왕문까지 가는 양편 정원은 온통 꽃무릇 천지이다.

 

  나는 바로 봄에 오르던 연실봉이 생각났다. 또 봄에 불갑사의 봄을 찍었던 그 자리에서 불갑사의 가을을 찍고 싶었다. 절집을 돌아 연실봉 쪽으로 올랐다. 연실봉으로 오르는 길목에 가을이 오고 있다. 지난 봄에 연실봉에 오르며 물에 젖은 봄을 봤는데 오늘 물에 젖은 가을을 본다. 꽃무릇 파란 잎이 무성했었는데 오늘 잎은 다 어디가고 산은 꽃으로 뒤덮여 붉기만 하다. 가을은 아직 제 빛을 내지 못하고 있다. 짙어질 대로 짙어진 푸르름이 절정이다. 무르익은 녹음은 곧 물들이기를 시작할 것이다.

 

 불갑사 대웅전 (뒤에 보이는 건물이 대웅전)

 정원(양쪽으로 꽃무릇이 한창이다.)

 

 불갑사 정원

  여기는 온종일 축제의 마당이다. 꽃무릇 축제이다. 사람의 축제이다. 붉음의 축제이다. 가을비 내리는 불갑사에 상사의 축제가 한창이다. 우리는 자꾸 뒤를 돌아보며 법성포로 향했다. 차창을 내다보며 꽃에 취해 잊었던 공복감을 발견하였다.

(2007. 9.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