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의 가을 2 -아우라지엔 비가 내리고-
비내리는 아우라지
가을, 아우라지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아침부터 내리는 비는 이곳 아우라지에 와서 더 구슬픈 소리를 내며 내리고 있었다. 산은 푸르게 쭉쭉 뻗어 강을 만들고 강은 사람들의 시름을 만든다. 저기 멀리 보이는 암강과 숫강은 아우라지 처녀가 내려다보는 길목에서 질펀하게 어우러진다. 이 강은 북쪽 구절리에서 흘러내리는 송천과 남쪽 임계에서 흘러 들어오는 골지천이 어우러진다. 여기서 옛날 서울로 뗏목과 행상을 위하여 떠나는 사랑하는 님을 떠나 보냈다고 한다. 그 애절한 사랑의 기다림이 정선아리랑을 탄생시켰다고 한다. 지금은 아우라지 소공원이 조성되어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지만 인위적으로 만든 공원이 옛 정서를 흐리기만 한다.
저 건너 합수머리 여송정이라는 정자 아래에는 아우라지 처녀상이 있다. 제법 양지 바른 언덕에 세워져 있지만 안개 속에서 축축하게 젖어 있을 것만 같았다. 예전에 이 아우라지를 사이에 두고 갈라진 두 마을에 사는 처녀 총각이 남몰래 사랑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들의 혼례식날 신랑 신부와 하객을 태운 배가 뒤집히는 바람에 모두 떠내려가 죽고 신랑만 살아 남았다고 한다. 물론 신부도 가마를 탄 채 물에 휩쓸려 갔다고 한다. 그 후에 익사 사고가 계속 일어나 처녀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처녀상을 세웠다고 한다. 멀리서 바라보아도 하염없이 강물을 바라 보고 있었다.
또 이런 전설도 전한다. 옛날에는 정선의 목재가 좋아서 한양에서 부자들이 집을 지을 때 정선의 목재를 아주 좋아했는데 여기서 뗏목을 꾸려 남한강을 거쳐 서울에 도착하면 뭉치돈을 벌었다고 한다. 그래서 '떼돈'이라는 말도 생겨 났는데 이 아우라지에 시집 온지 얼마되지 않는 처녀의 남편이 떼돈을 벌러 하냥으로 떠났다고 한다. 그런데 얼마 가지 못해서 골지천과 송천이 합수하여 흐르는 조양강 급류에 휩쓸려 죽었다고 한다. 처녀는 몇달이고 남편을 기다리다가 아우라지 두 강이 어우러지는 깊은 물에 몸을 던져 세상을 하직햇다고 한다. 그래서 그 넋을 달래기 위해 정자를 짓고 처녀상을 세웠다고 한다.
처녀는 망부석이 되어 아직도 남편을 기다리고 있다. 이른 가을의 짙은 녹음이 우거진 산에는 엉금엉금 산구름이 기어오르고 물안개가 자욱이 퍼지는데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아무도 없었다. 돌로 �은 방천둑이 을씨년스럽다. 처녀의 한이 이렇게 노래되어 전해지는지 모른다.
눈이올라나 비가 올라나 억수장마 질라나
만수산 검은 구름이 막 모여 든다
명사십리가 아니라며는 해당화는 왜 피며
모춘 삼월이 아니라며는 두견새는 왜 우나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좀 건너주게
싸리골 올동박이 다떨어 진다
떨어진 동박은 낙엽에나 쌓이지
사시장철 님그리워서 나는 못살겠네
비를 맞으며 공사판으로 어지러운 조양강 강뚝을 서성이다가 그냥 돌아왔다. 거센 물살 위에서 뗏목을 탄 사내들의 거친 부름이 빗줄기를 가르며 들려 오는 듯했다. 나는 인절미 한개 입에 물다가 목이메었다. 목구멍 저멀리에 늘어 붙은 콩가루가 침을 삼켜도 떨어지지 않는다.
돌아 오는 길에 다시 비가 내린다. 아우라지에는 어디에도 비 안내리는 곳이 없다.
(2007. 9. 22)